기자명김영일(국어국문·박사과정) 한글은 언어가 아니라 문자다. 여전히 ‘구어’단위의 명칭과‘문어’단위의 명칭을 혼동하여 ‘언어’와‘문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보게 돼 안타깝다.“ 영어는 어렵고 한글은 쉽다.”라든지, “ 한글은 과학적이고 우수한 언어다.” 라는 식의 표현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며칠 전,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 쓴 글 중 일부를 옮겨 놓는다. “모국어인 한글을 잘 구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에디터들에게 ‘한글 구사력’은 당연히 최우선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분은 언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잘 구사하지 못하고있다. ‘한글’은 문자지 언어가 아니며, 한국 사람들의 모국어는 ‘한국어’ 밖에 없다. 그리고 자음, 모음을 능숙하게 부려서 쓴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한글 구사력’이 아니라 ‘한국어 구사력’으로 써야 옳다. 한편 우리말 다듬기에 참여하고 있는 현직 소설가가 쓴 글 칼럼 중에서도“한글이야말로 미학적·수학적 일관성을 가진 진정한 명품 언어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반복하지만 ‘한글’은 ‘문자’이지 ‘언어’가 아니다. ‘문자’와 ‘언어’의 차이에 대한 확실한 개념은 19세기 언어학에서 처음으로 정립되었다. 단어의 표기에 사용된 문자 하나하나가 음을 표시하지 않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한 것이 19세기 중반의 일이다. 이전까지는 오늘날의 ‘음성’을 ‘글자’라고 불렀는데, 음성과 글자를 서로 같은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가령‘that’으로 표기된 영어 단어를 표기 문자의 종류와 같이 [t] [h] [a] [t] 4개 음성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했다. ‘문자’와 ‘언어’의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에는 언어학자들도 이 둘을 혼동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문자’와 ‘언어’를 확실히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글’은 ‘로마자’, ‘ 가나’와 같은 문자이고,‘ 한국어’는 ‘영어’, ‘일본어’와 같은 언어다. 그러므로‘한글’은 과학적이고 우수한 ‘언어’가 아니며,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한국어’가 아니다. l 김영일(국어국문·박사과정) -
기자명신정인 기자 AI 시대에 신문이 아직도 온건한 매체 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글이라는 수단 자체가 으레 그렇듯 오독을 유발하기 쉽다는 데 있다. 이러한 경향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더 심화됐다고 본다. Ctrl+F 기능이 상징하듯, 우리는 이제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 않아도 필요로 하는 정보를 몇 초 만에 찾아낼 수 있다. 이로 인한 부정적 측면은 그 ‘한 줄’, 나아가 ‘한 단어’가 곧 글 전체를 대변한다고 여기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점이다. 신문 기사에서는 이러한 오독이 사건의 속도와 파급력에 비례하는 편이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제목 한 줄이 캡처돼 돌아다니고 기사의 의도와는 무관한 해석들이 진실이 돼 버린다. 이러다 보면 누군가는 이미 가지고 있던 의견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정보만 골라 읽게 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에 갇히기 쉽다. 따라서 우리는 뉴스를 읽을 때 내가 원하는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그 결론에 맞는 증거만을 찾아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논리적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사건은 언제나 다층적이다. 여러 입장과 환경,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어떤 일도 단일한 원인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자는 기사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수차례의 취재와 확인을 거친다. 미처 고려하지 못한 요소는 없는지, 특정한 문장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지 면밀히 검토한다. 기사가 잘못 읽혔다면 그 책임은 독자의 해석 방식뿐 아니라 기자의 표현에도 일정 부분 있다. 그래서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여러 표현을 고민하고 단어 선택과 글의 구조를 수차례 조정한다. 최근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기사나 칼럼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순간을 여러 번 마주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왜곡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인터뷰문 한 줄이 지나치게 절대적인 의미로 소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신문을 읽고 제각각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신문이 여전히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관심은 언제나 기자를 성장하게 한다. 신문은 읽히는 만큼 발전하고 질문을 받는 만큼 날카로워진다. 앞으로도 본지는 더 투명하게, 더 정확하게, 더 깊이 있게 교내 상황을 담아내겠다. 편리함과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천천히 읽고 깊게 이해하는 신문의 가치는 오히려 더 빛날 것이라 믿는다. l 신정인 기자 scene@soongsil.ac.kr
기자명숭대시보 최근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커닝 사건이 발생했다. 연세대 인공지능융합대학의 3학점 전공선택 과목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수강생들이 집단 커닝을 한 것이다. 연세대는 담당 교수에게 문제가 된 학생들에 대한 처분을 맡기기로 했다. 교수는 문제된 학생들의 중간고사 점수를 모두 0점 처리하기로 했다. 고려대 역시 대규모 비대면 교양 과목에서 지난달 25일(토) 컴퓨터를 활용해 온라인 중간고사가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정답을 공유하며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이는 다른 학생들의 제보를 통해 밝혀졌다. 학교 측은 중간고사를 무효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사건이 터진 연세대와 고려대 수업의 수강 학생은 각각 600명, 1,434명이었다. 연세대의 경우 해당 수업은 전공선택 과목이었다는 점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는 점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비대면 강의를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학점을 따기 위함이다.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학생들의 잘못으로 여길 수는 없다. 쉽고 빠른 길을 찾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압박하는 경쟁 사회, 교육의 의미보다 학점과 스펙을 앞세우는 풍조는 학생을 학습 주체가 아닌 성적 생산자로 만들었다. 대학 역시 이를 외면해 왔다. 오랜 기간 이어진 대형 강의를 통한 방식은 학교의 책임 회피와 다름없었다. 교육의 질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는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숫자’로 취급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학생들의 부정행위만을 문제 삼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해당 대학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본교 역시 인문대에서 개설하는 교양 과목의 폐강 수는 점점 증가 추세이며 학생들은 쉽게 학점을 채울 수 있는 온라인 강의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구조가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대학을 단순히 스펙을 쌓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닌 배움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교의 역할이다. 올바른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평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대학의 본질적 임무다. 대학은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커닝한 학생들을 징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 학생이 어떤 배경 속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그 환경을 설계한 주체가 누구인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l 숭대시보 ssnews@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