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 한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사오 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청엽정(靑葉町)이라 부르지만 그때는 연화봉(蓮花峰)이라고 이름하였다. 즉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보면은 오정포(午正砲)가 놓여 있는 산등성이가 있으니 그 산등성이 이쪽이 연화봉이요, 그 새에 있는 동네가 역시 연화봉이다. 지금은 그곳에 빈민굴이라고 할 수밖에 없이 지저분한 촌락이 생기고 노동자들밖에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으나 그때에는 자기네 딴은 행세한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이라고는 십여 호밖에 있지 않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과목밭을 하고, 또는 채소를 심거나, 아니면 콩나물을 길러서 생활을 하여 갔었다.
여기에 그 중 큰 과목밭을 갖고 그 중 여유 있는 생활을 하여 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잊어 버렸으나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를 오생원이라고 불렀다. 얼굴이 동탕하고(얼굴이 토실토실하게 생기다)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앉아서 길게 목늘여 우는 매미 소리같이 저르렁저르렁하였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 늙은이로 아침이면 새벽 일찍이 일어나서 앞뒤로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집안일을 보살피는데 그 동네에는 그가 마치 시계와 같아서 그가 일어나는 때가 동네 사람이 일어나는 때였다. 만일 그가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여 그의 집으로 가보면 그는 반드시 몸이 불편하여 누웠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때는 일년 삼백육심 일에 한 번 있기가 어려운 일이요, 이태나 삼 년에 한 번 있거나 말거나 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는 얼마 되지는 아니하나 언제든지 감투를 쓰고 다니므로 동네 사람들은 양반이라고 불렀고, 또 그 사람도 동네 사람들에게 그리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섣달이면 북어쾌, 김톳을 동네 사람에게 나눠 주며 농사 때에 쓰는 연장도 넉넉히 장만한 후 아무 때나 동네 사람들이 쓰게 하므로 그 동네에서는 가장 인심 후하고 존경을 받는 집인 동시에 세력 있는 집이다.
그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 하나가 있으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빼지 못하여 몸뚱이에 대강이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크다. 머리는 전에 새꼬랑지 같은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으나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 하고 일어섰다. 그래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옴두꺼비가 서서 다니는 것같이 숨차 보이고 더디어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를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벙어리' '벙어리' 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앵모' '앵모' 한다. 그렇지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알지 못한다.
그도 이 집 주인이 이리로 이사를 올 때에 데리고 왔으니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지내 가는 벙어리지마는 듣는 사람보다 슬기로운 적이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서 결코 실수한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쓸고, 소와 돼지의 여물을 먹이며, 여름이면 밭에 풀을 뽑고 나무를 실어 들이고 장작을 패며, 겨울이면 눈을 쓸며 장 심부름과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못 하는 일이 없다. 그럴수록 이 집 주인은 벙어리를 위해 주며 사랑한다. 혹시 몸이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쉬게 하고, 먹고 싶어하는 듯한 것은 먹이고, 입을 때 입히고 잘 때 재운다.
그런데 이 집에는 삼대 독자로 내려오는 그 집 아들이 있다. 나이는 열일곱 살이나 아직 열네 살도 되어 보이지 않고 너무 귀엽게 기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버릇이 없고 어리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포악한 짓을 많이 한다.
동네 사람들은,
"후레자식! 아비 속상하게 할 자식! 저런 자식은 없는 것만 못해."
하고 욕들을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할 때마다 그의 영감을 보고,
"그 자식을 좀 때려 주구려.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두?"
하고 자기가 대신 때려 주려고 나서면,
"아뇨, 아직 철이 없어 그렇지. 저도 지각이 나면 그렇지 않을 것이 아뇨."
하고 너그럽게 타이른다.
그러면 마누라는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철이 없긴 지금 나이가 몇이오. 낼 모레면 스무 살이 되는데, 또 며칠 아니면 장가를 들어서 자식까지 날 것이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이오."
하고 들이대며,
"자식은 꼭 아버지가 버려 놓았습니다. 자식 귀여운 것만 알았지 버릇 가르칠 줄은 모르니까……."
이렇게 싸움만 시작하려 하면 영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 버린다.
그 아들은 더구나 벙어리를 사람으로 알지도 않는다. 말 못 하는 벙어리라고 오고 가며 주먹으로 허구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길로 엉덩이도 찬다. 그러면 그 벙어리는 어린것이 철없이 그러는 것이 도리어 귀엽기도 하고 또는 그 힘없는 팔과 힘없는 다리로 자기의 무쇠 같은 몸을 건드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앙증하기도 하여 돌아서서 방그레 웃으면서 툭툭 털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 버린다.
어떤 때는 낮잠 자는 벙어리 입에다가 똥을 먹인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자는 벙어리 두 팔 두 다리를 살며시 동여매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화승불(화승은 화약에 불이 붙어 터지게 하는 데에 쓰는 노끈을 말한다. 화승불은 화약 심지에 불을 붙임.)을 붙여 놓아 질겁을 하고 일어나다가 발버둥질을 하고 죽으려는 사람처럼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이러할 때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꽉 들어찼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였으며 주인의 아들을 저주한다는 것보다 이 세상을 저주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나오려 할 때 아주 말라붙어 버린 샘물과 같이 나오려 하나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그는 주인의 집을 버릴 줄 모르는 개 모양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밖에 없고 자기가 믿을 것도 여기 있는 사람들밖에 없을 줄 알았다.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는 것이 자기의 운명인 줄밖에 알지 못하였다. 자기의 주인 아들이 때리고 지르고 꼬집어뜯고 모든 방법으로 학대할지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으레 있을 줄밖에 알지 못하였다. 아픈 것도 그 아픈 것이 으레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요, 쓰린 것도 자기가 받지 않아서는 안 될 것으로 알았다. 그는 이 마땅히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을 어떻게 해야 면할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하여 본 일이 없었다.
그가 이 집에서 떠나가려거나 또는 그의 생활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는 언제든지 그 주인 아들이 자기를 학대하고 또는 자기를 못살게 굴 때 그는 자기의 주먹과 또는 자기의 힘을 생각하여 보았다. 주인 아들이 자기를 때릴 때 그는 주인 아들 하나쯤은 넉넉히 제지할 힘이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떠한 때는 아픔과 쓰림이 자기의 몸으로 스미어들 때면 그의 주먹은 떨리면서 어린 주인의 몸을 치려 하다가는 그것을 무서운 고통과 함께 꽉 참았다.
그는 속으로,
'아니다, 그는 나의 주인의 아들이다. 그는 나의 어린 주인이다.'
하고 꾹 참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얼핏 잊어 버렸다. 그러다가도 동넷집 아이들과 혹시 장난을 하다가 주인 아들이 울고 들어올 때에는 그는 황소같이 날뛰면서 주인을 위하여 싸웠다. 그래서 동네에서도 어린애들이나 장난꾼들이 벙어리를 무서워하여 감히 덤비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주인 아들도 위급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벙어리를 찾았다. 벙어리는 얻어맞으면서도 기어드는 충견 모양으로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싫어하지 않고 힘을 다하였다.
<중략>
3.
그해 가을이다. 주인의 아들이 장가를 들었다. 색시는 신랑보다 두 살 위인 열아홉 살이다. 주인이 본시 자기가 언제든지 문벌이 얕은 것을 한탄하여 신부를 구할 때에 첫째 조건이 문벌이 높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문벌 있는 집에서는 그리 쉽게 색시를 내놀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그 어떠한 영락한 양반의 딸을 돈을 주고 사오다시피 하였으니, 무남독녀의 딸을 둔 남촌 어떤 과부를 꿀을 발라서 약혼을 하고 혹시나 무슨 딴소리가 있을까 하여 부랴부랴 성례식을 시켜 버렸다.
혼인할 때의 비용도 그때 돈으로 삼만 냥을 썼다. 그리고 아들의 처갓집에 며느리 뒤 보아 주는 바느질삯, 빨랫삯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이천오백 냥씩을 대어 주었다.
신부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까지 상당히 견디기도 하고 또는 금지옥엽같이 기른 터이라, 구식 가정에서 배울 것 읽힐 것 못 하는 것이 없고 게다가 또는 인물이라든지 행동거지에 조금도 구김이 있지 아니하다.
신부가 오자 신랑의 흠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신부에게다 대면 두루미와 까마귀지."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어."
"색시에게 쥐여 지내겠지."
"신랑에겐 과하지."
동넷집 말 좋아하는 여편네들이 모여 앉으면 이렇게 비평들을 한다. 어떠한 남의 걱정 잘 하는 마누라님은 간혹 신랑을 보고는 그대로 세워 놓고,
"글쎄, 인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셈이 좀 나요, 저리구 어떻게 색시를 거느려 가누. 색시방에 들어가기가 부끄럽지 않담."
하고 들이대다시피 하는 일이 있다.
이럴 적마다 신랑의 마음은 그 말하는 이들이 미웠다. 일부러 자기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 후에 그를 만나면 말도 안 하고 인사도 하지 아니한다.
또 그의 고모 되는 이가 와서 자기 조카를 보고,
"인제는 어른이야. 너도 그만하면 지각이 날 때가 되지 않았니. 네 처가 부끄럽지 아니하냐."
하고 타이를 적마다 그의 마음은 그 말하는 사람이 부끄럽다는 것보다도 자기를 이렇게 하게 한 자기 아내가 더욱 밉살머리스러웠다.
"여편네가 다 무엇이냐? 저 빌어먹을 년이 들어오더니 나를 이렇게 못살게들 굴지."
혼인한 지 며칠이 못 되어 그는 색시방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집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마치 돼지나 말 새끼를 혼례시키려는 것같이 신랑을 색시방으로 집어넣으려 하나 막무가내였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 때려서 자기의 외사촌 누이의 이마를 뚫어서 피까지 나게 한 일이 있었다. 집안 식구들이 하는 수가 없어 맨 나중에는 아버지에게 밀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을뿐더러 풍파를 더 일으키게 하였다.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로 신부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마루 한복판에 태질을 쳤다.
그리고는,
"이년, 네 집으로 가거라. 보기 싫다. 내 눈앞에는 보이지도 마라."
하였다. 밥상을 가져오면 그 밥상이 마당 한복판에서 재주를 넘고, 옷을 가져오면 그 옷이 쓰레기통으로 나간다.
이리하여 색시는 시집오던 날부터 팔자 한탄을 하고서 날마다 밤마다 우는 사람이 되었다. 울면 요사스럽다고 때린다. 또 말이 없으면 빙충맞다(똘똘하지 못하고 어리석다)고 친다. 이리하여 그 집에는 평화스러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이것을 날마다 보는 사람 가운데 알 수 없는 의혹을 품게 된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곧 벙어리 삼룡이었다. 그렇게 예쁘고 유순하고 그렇게 얌전한, 벙어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만큼 선녀 같은 색시를 때리는 것은 자기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의심이었다. 보기에도 황홀하고 건드리기도 황홀한 만큼 숭고한 여자를 그렇게 하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세상에 있지 못할 일이다. 자기는 주인 새서방에게 개나 돼지같이 얻어맞는 것이 마땅한 이상으로 마땅하지마는, 선녀와 짐승의 차가 있는 색시와 자기가 똑같이 얻어맞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어린 주인이 천벌이나 받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였다.
어떠한 달밤, 사면은 고요적막하고 별들은 드문드문 눈들만 깜박이며 반달이 공중에 뚜렷이 달려 있어 수은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닦아낸 듯이 청명한데, 삼룡이는 검둥개 등을 쓰다듬으며 바깥 마당 멍석 위에 비슷이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하여 보았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공중에 있는 달보다도 더 곱고 별들보다도 더 깨끗하였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달이 보이고 별이 보이었다. 삼라만상을 씻어 내는 은빛보다도 더 흰 달이나 별의 광채보다도 그의 마음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듯하였다. 마치 달이나 별이 땅에 떨어져 주인 새아씨가 된 것도 같고 주인 새아씨가 하늘에 올라가면 달이 되고 별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자기를 어린 주인이 때리고 꼬집을 때 감히 입 벌려 말은 하지 못하나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는 정이 그의 두 눈에 나타나는 것을 다시 생각할 때 그는 부들부들한 개 등을 어루만지며 감격을 느꼈다. 개는 꼬리를 치며 자기를 귀여워하는 줄 알고 벙어리의 손을 핥았다.
삼룡이의 마음은 주인 아씨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또는 그를 위하여서는 자기의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분에 넘치었다. 그것은 마치 살구를 보면 입 속에 침이 도는 것같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4.
새댁이 온 뒤에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운 안 출입을 금하였으나 벙어리는 마치 개가 맘대로 안에 출입할 수 있는 것같이 아무 의심 없이 출입할 수가 있었다.
하루는 어린 주인이 먹지 않던 술이 잔뜩 취하여 무지한 놈에게 맞아서 길에 자빠진 것을 업어다가 안으로 들여다 누인 일이 있었다. 그때에 아무도 안에 있지 않고 다만 새색시 혼자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가 이 꼴을 보고 벙어리의 충성된 마음이 고마워서, 그 후에 쓰던 비단 헝겊조각으로 부시(부싯돌을 쳐서 불이 붙게 하는 쇳조각) 쌈지 하나를 만들어 준 일이 있었다.
이것이 새서방님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색시는 어떤 날 밤 자던 몸으로 마당 복판에 머리를 푼 채 내동댕이가 쳐졌다. 그리고 온몸에 피가 맺히도록 얻어맞았다.
이것을 본 벙어리는 또다시 의분의 마음이 뻗쳐 올라왔다. 그래서 미친 사자와 같이 뛰어들어가 새서방님을 내어던지고 새색시를 둘러메었다. 그리고 나는 수리와 같이 바깥 사랑 주인 영감 있는 곳으로 뛰어가 그 앞에 내려놓고 손짓과 몸짓을 열 번 스무 번 거푸 하며 하소연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물푸레로 얼굴을 몹시 얻어 맞아서 한쪽 뺨이 눈을 얼러서 피가 나고 주먹같이 부었다. 그 때릴 적에 새서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흉측한 벙어리 같으니, 내 여편네를 건드려!"
하고 부시 쌈지를 빼앗아 갈가리 찢어서 뒷간에 던졌다.
"그러고 이놈아! 인제는 주인도 몰라보고 막 친다. 이런 것은 죽여야 해!"
하고 채찍으로 그의 뒷덜미를 갈겨서 그 자리에 쓰러지게 하였다.
벙어리는 다만 두 손으로 빌 뿐이었다.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몇 백 번 코가 땅에 닿도록 그저 용서해 달라고 빌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비로소 숨겨 있던 정의감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픈 것을 참아 가면서도 북받치는 분노(심술)를 억제하였다.
그때부터 벙어리는 안방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더욱 벙어리로 하여금 궁금증이 나게 하였다. 그 궁금증이라는 것이 묘하게 빛이 변하여 주인 아씨를 뵈옵고 싶은 심정으로 변하였다. 뵈옵지 못하므로 가슴이 타올랐다. 몹시 애상의 정서가 그의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한 번이라도 아씨를 뵈올 수가 있으면 하는 마음이 나더니 그의 마음의 넋은 느끼기를 시작하였다. 센티멘틀한 가운데에서 느끼는 그 무슨 정서는 그에게 생명 같은 희열을 주었다. 그것과 자기의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그대로 대강이로 담을 뚫고 들어가고 싶도록 주인 아씨를 뵈옵고 싶은 것을 꾹 참을 때도 있었다.
그 후부터는 밥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틈만 있으면 안으로만 들어가고 싶었다. 주인이 전보다 많이 밥과 음식을 주고 더 편하게 하여 주었으나 그것이 싫었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집 가장자리를 돌아다녔다.
5.
하루는 주인 새서방님이 술이 취하여 들어오더니 집안이 수선수선하여지며 계집 하인이 약을 사러 갔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 계집 하인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계집 하인은 한 주먹을 뒤통수에 대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둘째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것은 그 집 주인은 엄지손가락이요, 둘째손가락은 새서방이라는 뜻이요, 주먹을 뒤통수에 대는 것은 여편네라는 뜻이요, 얼굴을 문지르는 것은 예쁘다는 뜻으로 벙어리에게 쓰는 암호다. 그런 뒤에 다시 혀를 내밀고 눈을 뒤집어쓰는 형상을 하고 두 팔을 싹 벌리고 뒤로 자빠지는 꼴을 보이니, 그것은 사람이 죽게 되었거나 앓을 적에 하는 말 대신의 손짓이다.
벙어리는 눈을 크게 뜨고 계집 하인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들어서며 놀라는 듯이 멀거니 한참이나 있었다. 그의 가슴은 무섭게 격동하였다. 자기의 그리운 주인 아씨가 죽었다는 말이나 아닌가, 그는 두 주먹을 마주 치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기 방에서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두어 시간이나 두 눈만 껌벅껌벅하고 앉았었다.
그는 밤이 깊어 갈수록 궁금증 나는 사람처럼 일어섰다. 앉았다 하더니 두시나 되어서 바깥으로 나가서 뒤로 돌아갔다. 그는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바로 건넌방 뒤 미닫이 앞 담에 서서 주저주저하더니 담을 넘었다. 가까이 창 앞에 서서 문 틈으로 안을 살피다가 그는 진저리를 치며 물러섰다.
어두운 밤에 그의 손과 발이 마치 그 뒤에 서 있는 감나무 잎같이 떨리더니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갔을 때, 그의 팔에는 주인 아씨가 한 손에는 기다란 명주 수건을 들고서 한 팔로 벙어리의 가슴을 밀치며 뻗디디었다. 벙어리는 다만 눈이 뚱그래서 '에헤' 소리만 지르고 그 수건을 뺏으려 애쓸 뿐이다.
집안이 야단났다.
"집안이 망했군!"
"어디 사내가 없어서 벙어리를!"
"어떻든 알 수 없는 일이야!"
하는 소리가 이구석 저구석에서 수군댄다.
6.
그 이튿날 아침에 벙어리는 온몸이 짓이긴 것이 되어 마당에 거꾸러져 입에서 피를 토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 곁에서는 새서방이 쇠줄 몽둥이를 들고서 문초를 한다.
"이놈!"
하고는 음란한 흉내는 모조리 하여 가며 건넌방을 가리킨다. 그러나 벙어리는 손을 내저을 뿐이다. 또 몽둥이에는 살점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피가 흘렀다.
벙어리는 타들어가는 목으로 소리도 못 내며 고개만 내젓는다. 그는 피를 토하며 거꾸러지며 이마를 땅에 비비며 고개를 내흔든다. 땅에는 피가 스며든다. 새서방은 채찍 끝에 납뭉치를 달아서 가슴을 훔쳐 갈겼다가 힘껏 잡아 뽑았다. 벙어리는 그대로 거꾸러지며 말이 없었다.
새서방은 그래도 시원치 못하였다. 그는 어제 벙어리가 새로 갈아 놓은 낫을 들고 달려왔다. 그는 그 시퍼렇게 날선 낫을 번쩍 들었다. 그래서 벙어리를 찌르려 할 때 벙어리는 한 팔로 그것을 받았고, 집안 사람들은 달려들었다. 벙어리는 낫을 뿌리쳐 저리로 내던졌다.
주인은 집안이 망하였다고 사랑에 누워서 모든 일을 들은 체 만 체 문을 닫고 나오지를 아니하며, 집안에서는 색시를 쫓는다고 야단이다. 그날 저녁에 벙어리는 다시 끌려 나왔다. 그때에는 주인 새서방이 그의 입던 옷과 신짝을 주며 눈을 부릅뜨고 손을 멀리 가리키며,
"가! 인제는 우리집에 있지 못한다."
하였다. 이 소리를 듣는 벙어리는 기가 막혔다. 그에게는 이 집 외에 다른 집이 없다. 살 곳이 없었다. 자기는 언제든지 이 집에서 살고 이 집에서 죽을 줄밖에 몰랐다. 그는 새서방님의 다리를 껴안고 애걸하였다. 말도 못하는 것을 몸짓과 표정으로 간곡한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새서방님은 발길로 지르고 사람을 불렀다.
"이놈을 좀 내쫓아라."
벙어리가 죽은 개 모양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대갈빼기를 개천 구석에 들이박히면서 나가 곤드라졌다가 일어서서 다시 들어오려 할 때에는 벌써 문이 닫혀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의 마음으로는 주인 영감을 찾았으나 부를 수가 없었다. 그가 날마다 열고 날마다 닫던 문이 자기가 지금은 열려 하나 자기를 내어쫓고 열리지를 않는다. 자기가 건사하고 자기가 거두던 모든 것이 오늘에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일한 값이 오늘에는 이것이다.
그는 비로소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란 것을 알았다. 그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은 것을 알았다.
그날 저녁 밤은 깊었는데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만이 들린다. 난데없는 화염이 벙어리 있던 오생원 집을 에워쌌다. 그 불을 미리 놓으라고 준비하여 놓았는지 집 가장자리 쪽 돌아가며 흩어 놓은 풀에 모조리 돌라붙어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집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듯이 타오른다.
불은 마치 피 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 먹는 요마(妖魔)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집 한 채를 삽시간에 먹어 버리었다. 이와 같은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낮에 이 집을 쫓겨난 삼룡이다. 그는 먼저 사랑에 가서 문을 깨뜨리고 주인을 업어다가 밭가운데 놓고 다시 들어가려 할 제 그의 얼굴과 등과 다리가 불에 데어 쭈그러져 드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건넌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색시는 없었다. 다시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또 없고 새서방이 그의 팔에 매달리어 구원하기를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뿌리쳤다. 다시 서까래에 불이 시뻘겋게 타면서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몰랐다. 부엌으로 가보았다. 거기서 나오다가 문설주가 떨어지며 왼팔이 부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몰랐다. 그는 다시 광으로 가보았다. 거기도 없었다. 그는 다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야 그는 색시가 타죽으려고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색시를 안았다. 그리고는 길을 찾았다. 그러나 나갈 곳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는 비로소 자기의 몸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을 자기의 가슴에 느끼는 것을 알았다. 색시를 자기 가슴에 안았을 때 그는 이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하였다. 그는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알았을 때, 그 색시를 내려놓을 때는 그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집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을 뿐이다.
벙어리 삼룡이(1925) -나도향- |
◆ 소설 읽기 |
● 줄거리 |
지금으로부터 십 사오년 전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연화봉에서 살던 아주 부지런하고 인심이 후한 오생원은 마을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사람이었다. 그는 삼룡이라는 추남이지만 충견과도 같이 주인에게 헌신적인 벙어리 하인 하나를 두고 있었다. 오생원은 삼룡을 사랑했다. 그러나 삼대 독자라 너무 버릇없이 자란 그의 열일곱 살 먹은 아들은 삼룡을 심하게 학대하고 구박한다. 또한 그의 아들은 동네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삼룡은 스물 세 살이 되기까지 아직 이성과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다. 그해 가을 오생원은 영락한 양반의 딸을 삼만 냥의 거금을 주고 자기 아들과 결혼을 시킨다. 새색시는 아름다운 외모에 참한 인품을 지녔다. 흠이 많은 새서방은 잘 생긴 새색시를 미워하여 혼인한 지 며칠 후부터 신방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오생원이 나무라자 화가 난 그는 신부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그후 새색시는 새서방으로부터 매일 맞으면서 산다. 그러나 이웃의 칭찬을 들으면서 생활한다. 삼룡이는 새색시가 왜 맞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고 주인 아씨를 동정하게 된다. 안출입이 자유로운 삼룡은 어느 날 먹지 않던 술에 만취되어 실컷 얻어맞고 길에 자빠진 어린 주인을 업어다가 뉘인다. 새색시 혼자서 바느질을 하다가 이를 보고 삼룡의 충직한 마음에 감동하여 비단 헝겊으로 부시 쌈지 하나를 만들어 준다. 이 비단 쌈지를 본 새서방은 삼룡과 새색시의 관계를 오해한다. 그는 새색시를 마당에 내동댕이 치고 부시 쌈지를 갈갈이 찢는다. 말도 못하고 코가 땅에 닿도록 용서를 빌던 삼룡은 의분이 솟구쳐 새서방을 내어던지고 새색시를 둘러맨 채 주인 영감에게 달려가서 하소연을 한다. 이튿날 아침 새서방은 삼룡을 채찍으로 마구 갈긴다. 그때부터 벙어리는 안방 출입이 금지되나 자기의 내면에서 이상한 감정이 싹트는 것을 느낀다. 어느날 계집하인으로부터 주인 아씨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삼룡은 안방으로 뛰어들어 자살하려던 아씨를 말리려 한다. 이 일로 삼룡은 오해를 사며 그 이튿날 어린 주인은 쇠몽둥이로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벙어리를 때려서 밖으로 내쫓는다. 삼룡은 믿고 의지한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며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기 역시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날밤 난데없이 오생원의 집이 화염에 쌓인다. 삼룡은 주인을 구한 뒤에 새색시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매달리는 새서방을 뿌리친다. 마침내 불길 속에서 새색시를 찾은 삼룡은 불길을 헤치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안 그는 색시를 내려놓는데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다. 집은 모조리 타고 그의 무릎 위에는 새색시가 누워 잇었으며 그의 울분은 불과 함께 사라졌는지 그의 입가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이 엷게 나타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한 때인 지금으로부터 십 사오 년 전에 들은 것이다. |
● 인물의 성격 |
◆ 삼룡이 → 주인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하인의 모습에서 새색시에 대한 학대와 자신에 대한 가혹한 행위에 점차 반항하게 되고 끝내는 주인집에 불을 지는 인물로 변모해가는 동적 인물 ◆ 새서방 → 오생원의 삼대 독자로, 버릇이 없고 새색시와 삼룡이에게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인물 ◆ 새색시 → 영락한 양반의 딸로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집을 와서 남편으로부터 갖은 수모와 학대를 받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는 여인이다. ◆ 오생원 → 부지런하고 인심이 좋아서 동네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자식을 잘못 키운 탓에 종국에는 마음의 근심을 지울 길이 없다. |
● 구성 단계 |
◆ 발단 : 인심이 후하고 존경 받는 오 생원 ◆ 전개 : 오 생원의 아들은 삼룡이를 괴롭히나 삼룡이는 참는다. ◆ 위기 : 삼룡이에게 새아씨가 부싯돌 쌈지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이 말썽이 되어 삼룡이는 내쫓긴다. ◆ 절정 : 불길 속으로 뛰어든 삼룡이는 주인을 구출해 낸다. ◆ 결말 : 새아씨를 가슴에 안은 삼룡이는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
● 이해와 감상 |
◆ 이 작품은 낭만성으로 채색되어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추한 외모에 벙어리이고 보잘 것 없는 하인이지만 영혼만은 순결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이것은 불구자 혹은 백치의 천진성과 충직성을 그래도 보여준다. 이러한 삼룡이가 연모하는 주인 아씨는 신분적 제약과 신체적 불구라는 벽 저편,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러나 삼룡의 순결한 사랑은 이 벽을 없애고야 만다. 불 속에 타 죽고자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주인 아씨를 구해내고, 그는 '행복한 미소를 띈 채' 죽는 것이다. 그의 죽음에는 현실적 죽음이 갖는 추(醜)와 고난의 이미지가 없으며, 사랑이 완성되는 짧은 순간으로 나타난다. 이 찰나의 낭만성에서 작품이 멈춤으로써 짙은 낭만성을 가지게 된다. ◆ 주인공 삼룡이는 벙어리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못 된다. 그러나 그는 착하고 충직하다. 자신의 신분적 굴레를 인정하고 개인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는 박해를 받고 그 박해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삼룡이에게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는 것은 포악하고 성미가 급한 주인 아들이다. 주인아들은 신분적으로는 삼룡이에 비해 우월하지만, 인격적 측면에서는 그와 반대다. 삼룡이가 사회적 박해와 인격적 불평등에 시달리며 살아오는 동안 그의 정욕 또한 자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색시로 인해 이성에 대한 열정이 발현되고, 그것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도전과 인간선언의 시기로 들어서게 됨을 의미한다. ◆ 이 소설에서의 '불'은 여러 가지의 상징성을 띤다. 삼룡이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열정을 불로 비유하여, 언젠가 폭발하게 될 연정이 '휴화산'처럼 잠재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고, 나중에 이 불길은 걷잡을 수 없는 연모의 감정으로 화하고, 그런 것들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모든 소멸케하고자 하는 파괴의 본능이 꿈틀거리게 되며, 드디어 불을 통해 삶을 청산한다. 그러므로 불은 연정과 울분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고 하겠다. 즉 '불'은 무화(無化)를 통한 재생, 죽음을 통한 부활, 불행의 청산을 통한 평화, 슬픔을 사르는 행복 등으로 이중적 의미를 띠고 있다. ◆ 이 소설의 구조는 만남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삼룡이와 아씨가 무관한 관계에서 출발하여 아씨가 시집을 옴으로 하여 가까이 하게 되고, 부시 쌈지를 만들어 준 것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마지막에 아씨를 안고 죽어가는 장면에서 합일하는 과정인 것이다. 본질적 사랑의 성취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결코 비극이 아니지만, 일상적 사랑의 쟁취는 실패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
● 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단편소설, 낭만주의 소설,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시간적 - 일제시대 * 공간적 - 남대문 밖 연화봉 마을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인간 감정에 대한 사실적 해부, 리얼리즘의 요소와 감상성 등 복합적 요소가 혼합된 작품 ◆ 출전 : 『여명』(1925) ◆ 주제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과 죽음을 통한 합일의 희열 신분적 · 육체적 불구자의 분노와 저항 그리고 사랑의 정열 |
● 생각해 볼 문제 |
1. 작가가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불구자를 내세운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신체적 불구와 정신적 순결성을 강조하고, 한편으로 삼룡이 연모하는 대상인 작은 아씨와의 사이에 있는 엄연한 단절 역시 강조하기 위해서. 2. 이 소설이 낭만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삼룡이의 죽음을 형상하는 작가의 태도를 예로 들어 증거하라. ⇒ 이 소설에서 삼룡의 죽음은, 모든 추한 요소가 제거된 죽음이다. 그의 죽음의 낭만적 의의만을 강조하는 데서도 이 작품의 낭만주의적 특성은 드러난다. 3. 이 소설의 개성과 보편성은 어떤 면에서 부각되고 있는지 말해 보자. ⇒ 아씨와 삼룡이의 사랑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독특한 관계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그 상황의 진전 또한 늘 일어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바탕은, 인간의 초월적 꿈과 밀착되어 있다. 이 점이 보편성을 띠고 있어서 공감을 크게 하는 것 같다. 4. 주인아씨와 삼룡이의 동질성은 무엇이며,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해보자. ⇒ 두 사람 다 박해를 당하는 피해자이며,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란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 만큼 동류 의식을 느낀다. 이 동류 의식은 인간적 애정으로,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5. '불'의 이중적 의미를 알아보자. ⇒ 불은 소멸과 생성의 이중성을 띤다. 불에 의해 그의 삶이 종언을 고함과 동시에 그 참담한 불행에서의 해탈을 동시에 의미한다. |
● 더 읽을거리 |
<벙어리 삼룡이>는 나도향의 초기 경향인 낭만적 · 감상적 정신과 <여이발사> 등에서의 자연주의적 · 객관적 관찰의 정신이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라는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해서 15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서술자의 존재는 비일상적인 삼룡의 행위와 그가 관련된 소설의 스토리에 신비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변형된 액자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 부분을 제외한 소설의 본문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적 시점이 교차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점 통일의 결여성이지만 이는 작가가 인물의 내면적인 갈등과 사건의 극적인 전개를 효과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이러한 시점의 혼용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삼룡은 입체적 성격의 인물이다. 즉 삼룡에게 있어 주인 아씨는 애정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주인의 부당함과 자신의 처지를 일깨우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작품의 진행에 따라 점차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각성해가는 인물이 바로 삼룡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은 방화로 이어진다. 즉 부당한 억압에 대한 복수와 반항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자신의 애정을 승화시키는 이중의 의미를 담은 방화이다. 불을 통해 자신을 억압해 온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근원적인 결말 처리 방식은 1920년대 중반 신경향파 문학의 한 조류와도 연관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주, 소작의 관계라는 대립적 구성을 기본으로 살인과 방화로 끝을 맺는 이른바 '살인 · 방화소설'이 유행한 바 있는데, 이 작품도 결말은 그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나도향의 소설은 초기의 감상적 낭만주의 경향에서 후기에 이르면 대상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변모한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를 기조로 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기법과 정신이 공존하는 나도향의 후기 소설이 지닌 특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벙어리의 운명과 맹목적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입체적인 성격 창조와 설득력 있는 사건의 전개를 통한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적 정신과 사실주의적 기법이 종합된 이러한 성취는 '불'이라는 적절한 상징적 장치의 사용과 더불어 이 작품을 나도향의 대표작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처리방식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지만, 이를 계급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처리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일 뿐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돈과 신분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란 인물이 상전의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지는 일종의 이면적 공략일 수 도 있다. 이 작품 속의 삼룡은 벙어리라는 생리적 결함 외에 옴두꺼비 같은 모습의 소유자며, 물건으로 존재하는 하인의 신분이다. 이런 삼룡이가 새색시를 연모함은 일견 환상적, 낭만적 행위일지 모르나 새색시에 대한 연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생원 아들의 새색시에 대한 억압과 학대는 삼룡에게 동정을 넘어서서 연모의 정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 주인공의 성격 이 소설에서 삼룡이는 충직한 하인으로 주인에게 복종하며 살아가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행위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이었지만, "그는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알았을 때 그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피어났을 뿐이다." 라는 작품의 결말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삼룡이의 죽음을 통해 제시된 것은 작가의 주제의식의 치열성이다. 특히 '불'이라는 상징물을 통해서 분노와 저항심, 사랑의 정열을 함께 처리한 것은 당대 소설에서 보기 드문 한 단계 높은 위치에 올라선 작가 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벙어리 삼룡이」의 소설적 성격 단편소설 「벙어리 삼룡이」는 1925년 7월 잡지 『여명』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삼룡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이지만, 오생원집 머슴으로 충직하게 일한다. 그런데 오생원의 아들이 장가를 들게 된다. 오생원의 아들은 성질이 포악하여 아내로 맞아들인 색시를 자주 구타한다. 삼룡이는 남편에게 심한 구박을 받고 있는 주인아씨를 가련하게 생각하다가 마침내 연모의 정을 느끼게 된다. 오생원의 아들은 이를 눈치채고는 색시를 호되게 다그친 후 삼룡이에게 몰매를 때리고 집에서 내쫓아 버린다. 쫓겨난 삼룡이는 복수심에서 주인집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불 속에서 쓰러진 주인아씨를 찾아낸다. 그는 죽어가는 주인아씨를 껴안으면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사랑의 성취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삼룡이는 사회적 신분으로 볼 때, 머슴이라는 하층민에 속한다. 게다가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벙어리라는 신체적 장애를 지니고 있다. 그는 흡사 일제의 학정에 신음하던 식민지 조선인의 비애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은 신분적인 제약과 신체적인 결함을 지닌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인물의 의식에 내면화되어 있는 인간적인 열정과 순수한 사랑이 격렬하게 폭발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 토론할 과제 -. 이 작품의 결말의 처리 방식이 어떤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지 토론해 보자. -.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자기 희생'이라는 모티프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육체적 장애'가 가지는 의미를 논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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