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송자(赤松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고시대의 선인이다. 달리 <赤誦子>라 표기하기도 한다. 《열선전》의 첫머리와 《수신기》에서 언급되며, 왕왕 최초의 선인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열선전》에 따르면 적송자는 염제(炎帝) 신농씨 시대의 우사(雨師), 즉 비를 관장하는 신이며 빙옥산(冰玉散)을 복용하는 술법을 알고 있었다. 이 술법을 체득하고 있으며 불 속에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데, 적송자는 신농(神農 :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삼황(三皇)의 한 사람으로, 농업ㆍ의료ㆍ악사(樂師)의 신, 주조(鑄造)와 양조(釀造)의 신이며, 또 역(易)의 신, 상업의 신이라고도 한다.)에게 이 술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적송자는 늘 곤륜산(崑崙山)에 있는 서왕모의 석실에 머무르며 비바람을 타고 산중을 오갔다. 염제의 막내딸이 적송자를 좇아 수행(修行)을 쌓았고 이윽고 선인이 되어 지상을 떠났다. 적송자는 이렇게 자취를 감추었으나 훗날 제곡 고신씨 시대가 되어 다시 나타나 우사가 되었다.
삼황오제 중 하나로 꼽히는 황제(黃帝)에게 가르침을 내린 광성자(廣成子 :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고 시대의 선인이다.)처럼 적송자 또한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하나인 염제에게 가르침을 내렸기 때문에 도교(道敎)에서는 중요시되는 선인이다. 최초의 선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적송자(赤松子)는 신농씨(神農氏) 때의 우사(雨師 : 비를 다스리는 신.)로 불 속에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곤륜산에서 늘 서왕모(西王母)의 석실에 들어가비바람을 타고 놀았다고 전해지는 전설(傳說)적인 신선(神仙)이다. 여러 신선 중에서 비을 주관하는 우사(雨師)의 책임은 막중하다. 우사가 한번직책을 다하지 못할 때 천하는 가물지 않으면 홍수(洪水)가 난다.
삼황(三皇)의 한 분인 염제 신농씨(炎帝 神農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 아직 비를전문적(專門的)으로 맡아 다스리는 우신(雨神)이 없었다. 한번은 연달아 이년동안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강(江)과 하천(河川)은 말라비틀어지고, 산(山) 또한메말라서 갈라질 지경이었으며 가까스로 개간해서 곡식(穀食)을 심은 농경지(農耕地)도모두 황폐하게 변했다.
염제 신농씨(炎帝 神農氏)의 마음은 말라빠진 대지(大地)와 같이 조급해졌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옥황상제(玉皇上帝)께 보고하는 외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때 천상에서도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원시천존 등 많은 성인들도 정작 애가 타고 있었다. 천상에서 상의를 거쳐 적송자(赤松子)를파견하여 우사(雨師)를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적송자(赤松子)의 모양은 아주 괴상하였다. 상체(上體)에는 짚으로 된 거적을 걸쳤고, 아랫부분에는가죽치마를 둘러 입었다. 머리칼은 봉두난발이었고, 다리는 맨살을 드러냈으며, 손톱은날카로운 짐승의 발톱처럼 자랐고 온몸은 누런 털로 덮였다. 손에는 버들가지를 가지고다니며 길을 걸을 때 노래를 부르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면서 정신나간 듯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는데 마치 야인(野人)과 같았다고 한다.
적송자는 하늘의 명령을 받고 신농씨를 찾아갔다. 만나자마자 자기소개를 하였다.
나의 이름은 적송자입니다. 예전에 유왕옥(留王屋)에 머물면서 오랫동안 수련을 하였습니다. 후에 저는 적진인(赤眞人)을 따라 남쪽으로 형산(衡山)에 가서 놀기도 했습니다. 그때 적진인께서는 늘 붉은 색의 신령한 머리를 한 비룡(飛龍)으로 변해서 다녔으며, 저 또한 뿔이 난 붉은 색의 작은 용(龍)으로 변해 적진인의 뒤를 쫒아 다녔습니다. 제가 원시천존 등 많은 성인들을 찾아뵈었을 때 중성(衆聖)들은 제가 비와 바람을일으키며 자유자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우사(雨師)를 맡겨강우(降雨)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적송자(赤松子)는 우사(雨師)의 직책에 적합하게 일을 잘 처리하였다. 날씨가 맑고 비가 오고 흐리고하는 것을 알맞게 잘 관리하고 배치하였다. 오 일에 한 번 오는 비를 행우(行雨), 십 일에 한 번 오는 비를 곡우(穀雨), 십오 일에한번 오는 비를 시우(時雨)라고 불렀다. 비를 내리게 할 때에는 성기지도, 조밀하지도 않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였으며 꼭 알맞게 내리게 하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과 농작물모두가 크나큰 혜택을 입었다.
图片来源 : 全铜黄大先赤松子像摆件黄初平养素净正真人家用
적송자는 성품이 부드럽고 상냥하여 염제 신농씨와 잘 융합하여 사이좋게 지냈다고 한다. 적송자는 또한 신농씨에게 "각종 음식 먹는 법, 독초와 약초 구분법(服食水玉之法) 등을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염제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적송자가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적송자를 졸라 외부로 놀러갈 때 자기를 데리고 가도록 하였다. 한 번은 그녀가 적송자 뒤를 쫒아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뒤만 쫒아 가다보니 닿은 곳이 천상이었다. 그 곳에서 그녀도 신선이 되었다 한다. 어떤 책에서는 그녀가 적송자(赤松子)의 연인이었다고도 한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적송자(赤松子)를 애모하였다. 특히 한나라를 통일하는데 일등공신인 장량(張良)은천하통일 후 몸을 보전하기 위해 "원컨대 인간사를 버리고(원기인간사 願棄人間事), 적송자를 쫒아 놀겠다(욕종적송자유 欲從赤松子遊 ) : 史記 유후세가史記 留侯世家" 하면서 은퇴하였다. 후세 시문(詩文)에서 종종 인용하는 전고(典故)가 되었다. 즉 공을 이루고 몸이 물러난다는뜻을 나타내거나 혹은 은둔하여 선도(仙道)를 닦겠다는 뜻을 비유한다. 과거에 한국, 중국 등에서벼슬하던 선비들이 벼슬에서 물러나면서 많이 인용하였다.